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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6.16 21. 고민의 결과물
  3. 2010.06.14 20. 갑작스러운 질문

2010. 6. 22. 01:19 제작일지

22. 멈춤

이상하게 녹취하는 것 말고 작업에 대한 생각을 안하고 있다. 안한다기보다는 못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피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에 나는 멈추고 있다. 아직 용기가 차오르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보여줄 자신이 없다. 관객들이 내 가족을 제멋대로 해석하도록 맡겨둘 자신이 아직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영화란 매체가 원래 그렇다고 하니, 나는 내가 왜 이런 일을 선택했는지 자꾸 생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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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하는 게 인터뷰가 아닐까 싶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 대답에 어떤 리액션을 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는가를 보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채 간단히 질문만 하더라도 제작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태도 같은 것이 드러난다. 인터뷰할 때는 정신 없이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녹취를 해보면 상대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거나, 대답을 잘라 먹거나, 내가 원하는 답을 하도록 강요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루의 말처럼 촬영을 할 때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데, 집중하다보면 질문자의 태도가 가감없이 드러나 버리게 된다. 그 태도는 아무리 편집을 하더라도 영화 안에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 제작자 자신의 모습을 관객에게 자신있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열심히 인격을 쌓는 수밖에 없는것 같다. 그런 척하는 것은 그런 척하고 있다고 드러나는 것이 영상인것 같다. 교묘하게 감추는 스킬을 쌓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존중하는 인격을 기르는 것이 훨씬 빠른 것 같다.

아빠를 촬영한 걸 보면 아빠 말을 잘 듣고 있다가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컷을 잡았다 싶으면 꼭 아빠한테 따지듯 빈정거리는 내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그냥 아빠의 말을 고이 주워듣지 못하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싶어하는 나의 짜증섞인 소리에 불과하다. 아빠는 대부분 나의 빈정거림에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쯤되면 내가 이미 카메라를 꺼버렸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못한다.

인터뷰를 하기에 부족한 인격이긴 하지만, 때로는 닥치고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그런 인터뷰를 녹취하는 중이다. 내가 내 작업에 넣기 위해 잠깐 고민해서 던진 질문에, 자신이 평생 한 고민의 결과물인 어떤 대답을 해주는 사람들. 2-3분의 짧은 대답이지만 그 안에 수년 고민한 세월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정말 신기하게도 듣고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진다. 긴 고민의 결과물을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해주는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 더불어 나의 가족들에게도. 언제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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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비가 오고 난 후라 공기 중 수분 농도가 적당하고, 적당한 온도인 것 같다. 이제 장마가 오면 꿉꿉해지겠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대구 집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촬영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촬영하러 간 동안은 그런 비가 내리지 않았다.

카메라 속에 나타난 나는 상대의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아빠의 질문에 당황해서 맥락에 맞지 않는 대답. 

아빠    니도 민주당 모양으로 그래 생각하나

      민주당이 어떻게 생각하는데?

아빠    정치를 잘못해서 천안함 공격 받았다고? 어?

      아빠 소리 좀 줄여봐라. 왜 민주당에서 그렇게 말하나?

아빠    민주당에서 그런 말 하고 있잖아 지금. 저거 모양으로 그런 정치를 하면 천안함 공격을 안 받을텐데

      민주당도 맨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고. 

아빠    뭐가 다르지 않다고?

      노무현 했을 때도 이라크 파병하고 다 했잖아.


아빠는 북한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물었는데, 나는 이라크 파병이야기 한다. 돌고 돌고 돌면 그것이 대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빠를 설득하기엔 나도 아는 것이 없어서, 아빠가 갑자기 질문을 하면 나의 바닥이 쉽게 드러난다. 동생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입장이나 생각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서툴다. 그러면서 상대에게는 급작스러운 질문들을 잘도 던진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음을 내세워서.

녹취하다보면 좋지 않은 내 발음과 말끝을 흐리는 습관이 거슬린다. 좀 똑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없나? 소리치고 싶지만...

촬영한 분량이 이제 테이프 30개다. 인터뷰가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촬영 분량이 적은 것 같다. 이번 주에 녹취를 다 해보고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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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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