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28. 01:11 제작일지

24. 청소하자!

오랜만에 제작일지를 쓴다. 추석 연휴 전주부터 오늘까지 1차 컷 편집을 하였다. 자료 영상이나 자막, 내레이션 등이 빠지긴 하였지만, 편집 구성안 대로 일단 붙여보았다. 2시간 30분 정도가 나왔다. 오케이 컷만 붙인 것 정도. 인터뷰를 많이 자르지 않았고, 전체를 본다는 느낌으로 컷을 길게 붙인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물론 애초에 생각했던 간결한 느낌의 중편이 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지만.

컷 편집을 하는 동안 재미있었다. 머릿속으로 수년 동안 해온 기획이 클립으로 만들어지고 화면으로 보이는 것이 우선, 속시원했다. 드디어 만들고 있구나. 그리고 구성을 생각하지 않는 컷 편집 자체가 원래 재밌는 과정이다. 퍼즐 맞추는 것처럼. 그리고 하루하루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 날 편집된 것에 따라서 버스에서의 느낌이 달라진다. 어떤 날은 만족감에 룰루랄라이고, 어떤 날은 깊은 한숨. 오늘은 초조함의 극치이다.

촬영이 끝난 후 생각했던 엔딩장면까지 붙여봤는데, 촬영이 너무 좋지 않다. 촬영이 괜찮은 것은 생각보다 밋밋하다. 호흡이 왜 그리 짧은지, 왜 그리 부지런하게 찍지 않았는지, 아쉬움보다는 초조함.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어진 클립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기획된 플롯이 있긴 하지만, 2시간 30분 에서 1시간 30분을 덜어내면서 이야기를 잘 짜야한다. 구성! 그것을 위해 잘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진행과정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촬영과 구성을 혼자 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가족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얼마만큼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장면이지만, 타인들로서는 도무지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장면들도 많은 것 같다. 그것들을 얼마나 설명할 것이냐, 아니면 느껴지도록 잘 구성할 것이냐. 둘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강약중강약. 리듬을 타는 것. 한 씬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지말고  심플하게 가는 것.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오판하지 않는 것. 또 뭐가 있을까. 이번 주까지 구성안을 정리하고 다음 주에 내레이션과 자막까지 고민하면서 편집을 다시 해봐야 한다. 내일은 애니메이션 시안을 보기로 했다.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디자인의 디자인] 저자인 하라켄야의 인터뷰가 잡지에 실렸다. 심플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사실 청소와 비슷하다고 했다'. 낙후되었다고 하는 지역을 발전시키는 운동을 보며 '차라리 그보다는 청소를 하는 것이 좋다. 청소를 하면 서글프더라도 확실히 깨끗해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대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들은 잠시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금방 지루해진다. 가지고 있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 차례 모두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비로소 깔끔해지고, 최소한의 것만 둔 공간이, 조용한 공간이 아름답다.' 고 했다. 일상속에서 심플하게 사는 방법을 묻자,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다. 테니스 선수는 윔블던 우승을 위해 열중하는 것으로 심플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열중하는 것으로 심플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한가하면 산만해지기 마련이지 않나.' 라고 대답.

주말에 본 [카모메 식당]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심플하다는 느낌보다는, 간결하고 단아한 느낌이었다. 비어있음으로 꽉 차게 느껴지는. epmtiness.

중심은 잡아야겠지만, 이번 한 주는 하라켄야 아저씨의 이야기를 명심하며, 카모메 식당이 준 느낌을 기억하며 잘 버려야겠다. 청소를 잘 해야겠다. 일단 버리고 생각나지 않으면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제 여름 옷을 정리하고, 겨울 옷을 꺼냈다. 여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옷이나 거의 입지 않은 옷들은 정리해서.(어디로 보내야 하지?)

깊이 있는 작품은 못 만들더라도, 넘치는 작품은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중심은 잘 잡고, 청소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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