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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4 03. 명절 보내기

2010. 2. 14. 00:41 제작일지

03. 명절 보내기

설 연휴를 맞아서 대구집에 내려왔다. 서울에 가서 2년 정도는 명절에 내려오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친척들이 북적거리는 명절보다는 평일이 좋았다. 그러다보니 집에 올 일이 점점 줄었고 일년에 두어번 정도 가족들 얼굴을 보았다. 평소 연락도 잘 안하는 편이라 이러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명절을 챙기고 있다. 가능하면 선물이라도 하려고 하고.

이번 설에는 친구들 안 만나고 집에서 뒹굴뒹굴 쉬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집에서 먹고 테레비만 봤더니 저녁에는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루종일 테레비만 봤더니 멍하고 기분도 별로고. 가족들이 저녁에 하나둘 들어오니 그나마 나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골목길에서 들리는 사람들 소리, 언니가 쇼핑몰 구경하는 소리, 엄마와 아빠가 드라마 보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구에서 살 때의 느낌이 났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이 공간이 비로소 체감되기 시작했고 여기서도 뭔가 생산적인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다가 컴퓨터를 켰다. 네이버에 뜬 뉴스를 클릭하지 않고 천천히 본다. 인터넷을 하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하더니 박근혜라는 이름이 적힌 기사를 읽고 있다. 낮에는 조선일보를 펼쳐놓고 보던 아빠. 당연히 그런 류일줄 알았는데 프레시안 기사이다. 네이버에 뜬 기사를 보고 클릭해서 보는 것 같다. 조선일보에서 말하던 논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텐데 찬찬히 읽으신다. 그러고 또 다른 기사들을 검색한다. 아빠가 그 기사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아빠가 인터넷을 배우지 않았다면 프레시안의 기사를 볼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대학교 다닐 때 한겨레를 구독했었다. 우리집에 오는 신문은 조선일보와 한겨레. 그러다 아빠가 조선일보를 끊었다.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받았는지 아니면 돈이 아까워서 그랬는지 기억은 안난다. 나는 한겨레를 끊지 않았고 아빠는 아침에 자연히 한겨레를 보게 되었다. 묵묵히 한겨레를 보면서 마지막엔 한 두번씩 고래를 저었던 것 같다. 나한테 한겨레를 본다고 뭐라고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내가 신문값을 못 내어서 수금하는 아저씨가 찾아오는 바람에 아빠가 한겨레 신문값을 내어주었다. 조선일보 구독자가 한겨레 신문값을 내는 그런 이상한 상황. 그건 내가 아빠 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게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파고들 수 있는 지점이다.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큰 개념인 부녀관계. 그걸 프레임으로 시작해서 정치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빠가 프레시안 기사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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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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