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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12.07 31. 오리무중

2011. 1. 20. 02:37 제작일지

37. 넘어서기

나의 이야기와 가족이 나오다보니, 드러내는 정도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니 정도보다 포장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가족들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고민들. 초반 그런 고민들에 흠뻑 빠져 중2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막판으로 가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중2병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자의식 과잉인 것은 진즉에 알고 경계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더라. 중얼중얼. 그러다보니 제작일지도 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리기도 수차례했다. 내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는데, 부끄러움을 못 견디는 걸 보면 확실히 과잉이다.

인디다큐에 내기 위해서 몇 주 편집을 했다. 아직 가편 시사를 한 번 더하고 수정도 할 것 같지만,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내일은 가이드 내레이션 녹음을 한다. 그래서 구성안을 다시 보고 내레이션 대본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어딘가 비겁한 구석이 있다. 과잉이었던 구성안이 부끄러워 하나씩 덜어내다보니, 이젠 스스로를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결코 담담하지 않다. 괜찮은 척 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지금의 영화가 아니라, 과거의 내 삶이다. 작은 어려움에 엄살이 심했다. 지금의 편집본을 보면 내가 과하게 엄살을 부리는 동안 고생한 가족들이 눈에 보인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엄살을 부렸던 나조차 감춘 것은 아닐까. 녹음을 앞두고 슬쩍 걱정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예민한 부분에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 덕분에 자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 상처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상처는 보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내 한계이다.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이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하찮아보이겠지만 나에겐 어마어마한 산이었던 상처 혹은 가난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다른 지점을 보고 싶다.

노홍철이 텐아시아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이들의 경험을 가장 쉽게 배우는 것이 대화라고, 그래서 자기는 낯선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나도 낯선이들에게 말 거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이유가 다르다.  나는 낯선이들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찾기 위해 말을 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넘어서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좁다. 이번 작업이 나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제발...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나보다. 내 안에 갇혀있을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모니터를 통해, 녹취록을 통해 계속 보게...

넘어서기가 잘 된다면, 나는 내가 화자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자기에게 갇혀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나의 경우엔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로 시작하는 문장의 글쓰기도 좀 줄게 되겠지. 이 포스팅도 과잉이지만, 병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치료는 시작된다고 했으니, 중2병을 인정하며 공개. 부끄러워하는 것도 부끄럽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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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주말동안 대구에 내려가서 촬영을 하고 왔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 인터뷰 촬영들이 빠지다보니, 전부 내가 촬영한 꼴이 되었다. 가편 시사 후 구성을 수정하다가 비어있는 부분들, 미뤄뒀던 촬영을 하러 갔다. 인터뷰 촬영까지 하고 왔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고, 고민은 많은데 정신이 없다. 이미지 촬영하러 고향인 청도에 갔다가 아빠랑 거울 보면서 찍은 사진, 거의 유일한 스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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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2010. 12. 7. 18:50 제작일지

31. 오리무중

가편 시사 끝내고 정리를 하고, 금방 다시 구성안을 작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것 참. 갈수록 모르겠다는 심정이다. 생각은 더 복잡하게 꼬여가고 정리는 안 되고. 흑.

밤마다 온갖 구성 단상들이 나를 괴롭혀,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다가 새벽 늦게야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다. 제작일지라도 쓰면서 정리해보려고 해도, 고민의 지점들이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나와 가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 촬영과 자료영상을 표현할 아이디어가 부족한 게 문제. 무엇보다 아직도 결론이 내 마음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문제다. 생각을 정리했다 싶으면 다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전반까지의 구성은 명확한데, 후반의 구성에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제 새벽엔 잡 생각 안하고 잠들려고 숫자를 200까지 여러번 세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 어렵다. 어려워."

그리고 오후 내내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인 걸 보고 내뱉은 말,

" 엉덩이만 무겁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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