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9. 18:18 제작일지

19.헉소리난다.

내일 반이다 회의에서 공유할 구성안을 작성하려고 선거 전에 적었던 구성안을 보다가 헉소리가 났다. 선거 촬영으로 대구 가기 직전에 적었던 구성안인데, 그 구성안에서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을 아빠에게, 사람들에게 하나도 못 물어본 것이다. 머뭇머뭇 거리다가 그 어느 때보다 스펙터클했던 선거는 끝나버렸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블로그에 제작일지를 쓰고 있다.

나는 왜 선거에 관련된 질문을 못했던 것일까. 안했다기보다는 못했다는 게 맞다. 이상하게 묻고 싶지 않아졌다. 선거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엄마 아빠와 시장 사람들의 생활의 현장에서 내가 하는 정치 이야기는 얼마나 힘이 없는지 반복해서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닥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시장에 나와 드르륵 셔터문을 올리고, 재료를 다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물어봐야 할 것은 분명히 있었는데, 내 마음을 빨리 추스리지 못했다. 잠이 부족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일어난 엄마에게 선거하러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재취업을 준비하며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포항까지 자전거 타고 간다는 동생에게 진보신당을 찍으라고 하지 못했다.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언니에게 선거에 대한 이야기 조차 못 꺼냈고, 아빠에게 더이상 왜 한나라당이냐고 묻지 못했다. 그 당시는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파고들걸 싶었다. 조금 더 물어볼걸. 서울로 돌아와서도 궁금한 게 많은 걸 보면 아직 덜 파고든 게 분명한데...하지만 다시 그 상황이 된다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어떤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헉소리 났지만, 더이상 헉소리 내지 않으려면 더!

한가지 확실해진 건 정치인이 전문가들 인터뷰는 안하기로 한 것이다.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선거기간 동안 확실히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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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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