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청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18 [리뷰]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 한윤형
  2. 2011.04.11 [상영후기] 여성영화제 상영! 1
* [개청춘]을 통해 인연을 맺은 한윤형 (<안티운동조선사>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등의 저자) 님의 리뷰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yhhan.tistory.com/1333

<개청춘>을 연출했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멤버들이 각기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 그중 손경화의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과 나비의 <송여사님의 작업일지>(35분)은 이전에 얘기했듯
2011/03/23 - [문화/영상물] - 인디다큐페스티벌 2011 에 서 상영되었다. 지민의 <두 개의 선>(85분)은 4월 7일에서 14일까지 신촌 아트레온 관에서 열리는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에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제에선 세 사람의 신작이 모두 상영되는데, <그 자식...>은 4월8일(금)과 4월12일(화) 오후 다섯시, <두 개의 선>은 4월 9일(금) 오후 다섯시와 4월 13일(수) 오후 두시, <송여사님의 작업일지>는 4월10일(일) 오후 두시와 4월12일(화) 오후 다섯시에 '아시아 단편경선 3'에서 상영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http://www.wffis.or.kr/wffis2011/00_intro/intro.html )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은 <개청춘>의 GV시간에 감독들이 후속작에 대한 설명을 할 때부터 기대작(?)이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제목이 일종의 '낚시'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개청춘> 감독의 후속작 이름을 들었을때 자연스레 '그 자식'이 현임 대통령을 말하는 것일 거라 생각하게 되었는데, 사실 제목에서 말하는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구에서 자라난 감독은, '그 자식'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 거라 했던 동네 어른들의 웅성거림으로부터 김대중을 알게 되었다. 그후 십 수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자라난 동네의 사람들과 사뭇 다른 정치의식을 지니게 된 감독은, 아버지의 정치의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반이다의 나비가 찍은 <송여사님의 작업일지>와도 흡사한 구석이 있지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함께 상영되었던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53분)와 같은 핏줄의 영화일 것이다. GV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모래> 역시 감독과 친구들이 어떤 모임에서 "왜 아버지들은 한나라당을 찍는 걸까?"라는 의문을 공유한 후,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의 투표를 클라이막스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래>가 묘사하는 감독의 가정은 <그 자식...>의 가정과 계층적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래>는 '강남'이라는 공간에 더욱 천착하여 "나는 강남 은마아파트에서 산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조금 다른 결의 영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모래>의 클라이막스는 투표 장면이 아니라, 감독의 가족이 강남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아파트를 팔고 이사하는 그 순간이 되었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나 <모래>와 같은 영화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영상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영화들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의 연출에서 뛰어난 지점들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나'와 '내 가족'들을 그린다는 다큐멘터리 컨셉 자체가 한동안 성행했지만 이미 '흘러간 유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묘하게도 인디다큐페스티벌 국내신작전 심사평에서 http://sidof.org/510 수상을 하지 못한 채 함께 언급되는 처지가 되었다. 심사평은 "이 젊은 두 작가는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제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자신의 부모세대와 어렵지만 대화하고 있었"고, 그들의 "진심과 정제된 언어는 한편의 훌륭한 시를 접하듯 깊은 여운을 남겼"다고 말한다.


그 '깊은 여운'의 정체를 규명하려면 아마도 영상언어의 맥락과는 다른 문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반이다의 멤버들이 나같은 반푼이 글쟁이에게 굳이 초대권을 보내온 것이 아닐까 한다. 함께 영화를 본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 자식...>은 홈비디오를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동세대의 일하는 친구들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자신들의 모습도 물끄러미 들여다볼 수 있었던 <개청춘>의 후속작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홈비디오 같은' 모든 종류의 것들이 우리에게 여운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자식...>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편하게 얘기하면서도 보편적인 어떤 경험에 접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일 테다.


그 보편성이란 건 무엇일까? <그 자식...>에 조금 아쉬움을 표한 사람들은 '어차피 다 아는 얘기인데 너무 차근차근 접근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라고 말한 건 그들이 경상도의 가난한 아저씨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태와 그 논리에 대해 이미 알만큼 안다는 그런 의미일 테다. 사실 <그 자식...>이나 <모래>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이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사람들은 아니다. 우연히도, 혹은 자연스럽게도 둘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분들은, 제각기 '대구'와 '강남'이란 공간에서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전형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의 발화 사이엔, 그분들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층적 차이를 잊게 할 만한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공통점'을 발견할 때, 정치에 대해 논의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섣불리 '타자화'하고 덧붙여 지역과 세대의 낙인도 찍는다. 영남 사람들이 문제야, 나이 든 사람들이 물러나야 이 나라가 잘 될 거야, 영남 사람들이나 나이 든 사람들이 투표를 열심히 하는 건 유감이야...등등의 말들. 특히 한국 사회의 진보담론을 전유한 '386세대'의 경우(좀 더 넓게 잡으면 그보다 살짝 아래인 90년대 초중반 학번들까지) 그런 이들을 '무지한 대중'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생물학적으로 그들이 퇴장하기만을 기다려 온 것은 아닌가?


그러나 한국 사회 정치 발전의 지지부진함이나 최근 부각되고 있는 '청년세대 보수화' 담론은 정치적 진보라는 것이 나이든 사람이 늙어죽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달성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러한 청년보수화에 대한 386세대의 시선은 "역시 독재정권으로부터 세뇌당한 부모들에게서 자라난 아이들이라 보니 지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은밀한 속삭임을 동반한다. 그 이면에 그 잘난 세대로부터 태어나 잘난 교육받고 자라난 우리의 어여쁜 10대들에 대한 예찬의 감정이 베어 있음은 물론이다. 


1980년대생들과 1990년대생들이 나중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예상은 여기서 생략하도록 하자.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렇게 다소 나이브하게 구별되는 세대별 정치담론에 짓눌린 한 또래집단의 실존적 고민이다. 이를테면, 내게 정치의식을 학습시킨 저 선배들이 '무지한 대중'이라고 소리높여 비난하는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부모의 삶을 부정하고 담론의 학습을 따라 그들을 경멸하는 시선을 내재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내 부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진보담론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답이 아니라면, 어떤 해답이 존재하는가? 


이십대 초중반에 두 가지 선택 중 한 방향으로라도 요동을 쳤을 그 세대가 서른 문턱에 이른 순간에, '아버지의 정치의식의 기원'을 탐색해 보자고 달려든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스무 살이 넘어 그들 중 일부는 부모의 정치의식과 절연하고 새로운 종류의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적어도 정치의식의 측면에서 그들은 '고아'였고, 그들 부모의 '전통'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전통을, '광주의 학살'로부터 태어났다는 선배 세대의 서사적 전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식을 형성했다. 실제로 학살의 동시대를 살지 못한 이들은 제각각 제 시대의 죽음을 호출해내거나 근 과거의 죽음들을 서사화/전설화함으로써 정치적 의식을 쌓아갔다.


그리고 서른, 선배들처럼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하기는커녕 무언가를 시작도 못했다는 자각이 드는 시점에, 그들은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담론의 맥락과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유물론적인 맥락 사이의 존재론적 모순을 느끼게 된다.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설령 독립을 했더라도 지금껏 먹은 것과 입은 것, 그리고 만에 하나 내 삶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경우 부모님에게 "최소한의 안전망"(나레이션에 나오는 말이다.)을 요구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문제의 귀결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문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주할 수도 없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만 앞으로 가기에도 두렵고 뒤로 가기에도 위태로운 그런 중간지점이다. 굳이 이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의 사회적 의미를 찾자면, 한국의 정치평론들이 손쉽게 배제해온 이 다수의 '타자'들에 대해 어떻게든 말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리라는 데에 있으리라. <그 자식...>은 영남, 기독교, 한나라당 지지, 빈곤층이라는 한국 사회의 꽤 많은 구성원들에게 하나쯤은 해당할 것 같은 전형들을 들이밀면서 이 보편적인 과제를 가족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것이 영상의 몫이라면, 또한 영상이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관객의 몫은 이 영화를 관람하고 함께 얘기나누는 것일 게다. 일단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Posted by cox4

여성영화제에서 지난 금요일 한 번 상영을 했다. 세번째 상영임에도 전 날 잠을 설쳤다. 출연하신 부모님이 오시기 때문. 동생에게 파일을 보내줬기 때문에 영화를 미리 보시고 오시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어떤 질문을 할 지 신경이 쓰였다.

월차를 낸 남동생과 부모님이 12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산 지 벌써 7년째가 되어가지만 부모님이 올라온 건 처음이다. 가게를 하는 엄마가 명절 외에는 거의 문을 닫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딱히 내 사는 곳을 보여주고 싶은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편이다. 사이는 좋은 편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사는 편이다.

서울역으로 마중 가는 버스 안에서 기분이 묘했다. 나를 보러 세 사람이 서울에 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실감이 났다. 엄마가 가게를 닫고 오다니, 영화를 상영하는 게 좋긴 좋은가 보다 싶었다.

집에 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집이 좋고 괜찮다며 안심하셨다. 인사동으로 가서 밥을 먹고, 경복궁을 걷다가, 엄마 옷 한 벌 사주고 싶다는 아빠 때문에 명동으로 갔다. 명동에 가면 엄마가 입을 옷이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거기서 옷 사니까! 하지만 명동엔 엄마가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새가빠지게 돌아만 다니다가 아빠한테 뭘 모른다는 핀잔을 듣고, 신촌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들에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렸다. 엄마, 아빠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설레는 표정이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본인들의 모습이 나오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과 엄마는 자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지 못했고, 아빠는 묵묵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또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GV때 할 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고 GV 타임. 아빠가 없을 때는 GV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출연한 가족들이 있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의 감정을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아빠에 대한 판단을 말하는 것 때문. 대부분 가족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도 서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딸로서의 생각과 연출자로서의 생각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둬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GV 시작.

(사진출처)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관객분들이 적 극적으로 질문해주셔서 참 좋았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두신 분들이 참 많구나 싶었고, 기독교 나 경상도 출신으로 고민 하는 이도 참 많구나 싶었다. 권은선 프로그래머님의 스피디한 진행으로 GV를 진행했다. 가장 인상적 인 질문은 팍팍한 현실들 뿐인데, 어디서 힘을 얻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정확한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이런 맥락) 그 질문을 받으니 생각이 났다. 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에 갇히지 말고, 나의 작은 상처, 의문에 갇히지 말고, 자명한 진실들을 바라보면 된다는 것. 이번 작업으로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한 것들을 한차례 정리가 되었으니, 과거의 기억 때문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것, 그런 것이 정리되었다. 나에겐 명확한 느낌인데, 이런 추상적인 문장으로도 이 느낌이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보고 아빠가 어땠는지 물어봐서 아빠가 직접 대답을 했다. '기업을 하다보면 이런 비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대답을 했다.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 집에 가서 마저 읽겠다고 했지 만, 자신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듯.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질문하는 사람들이나 GV 후 아빠나 나에게 와서 말하는 사람들의 늬앙스였다. 아빠가 훌륭하시다고 말하시는 분 들이 계셨지만, 단서를 붙이시는 분들이 많았다. '가난하지만 혹은 못 배웠지만' 그 늬앙스는 마치 가난 하거나 못 배운 사람들은 훌륭해지기 힘들다는 전제를 단 것 같았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빠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가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가난을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나였다. '가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지만, 어쩌면 관객들도 아빠의 가난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든 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또 아빠를 원망했던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좀 더 '가난'이란 단어를 강조 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그리고 좀 더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지만, 역시 '가난'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밝히고 나니 동정의 눈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과민한 반응일까? 대부분이 그랬다고 하면 오버일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몇 분의 어른들은 그런 말을 나와 아빠에게 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GV의 분위기는 좋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가셔서 대구 집으로 돌아가셨다. 카탈로그를 챙겨가신 아빠는 사람들에게 자랑 좀 하셨으려나. 여성영화제에 상영한 걸로 한 2년은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딴 일 하라거나, 뭐하고 다니냐고 묻지 않겠지?
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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