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제에서 지난 금요일 한 번 상영을 했다. 세번째 상영임에도 전 날 잠을 설쳤다. 출연하신 부모님이 오시기 때문. 동생에게 파일을 보내줬기 때문에 영화를 미리 보시고 오시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어떤 질문을 할 지 신경이 쓰였다.

월차를 낸 남동생과 부모님이 12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산 지 벌써 7년째가 되어가지만 부모님이 올라온 건 처음이다. 가게를 하는 엄마가 명절 외에는 거의 문을 닫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딱히 내 사는 곳을 보여주고 싶은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편이다. 사이는 좋은 편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사는 편이다.

서울역으로 마중 가는 버스 안에서 기분이 묘했다. 나를 보러 세 사람이 서울에 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실감이 났다. 엄마가 가게를 닫고 오다니, 영화를 상영하는 게 좋긴 좋은가 보다 싶었다.

집에 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집이 좋고 괜찮다며 안심하셨다. 인사동으로 가서 밥을 먹고, 경복궁을 걷다가, 엄마 옷 한 벌 사주고 싶다는 아빠 때문에 명동으로 갔다. 명동에 가면 엄마가 입을 옷이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거기서 옷 사니까! 하지만 명동엔 엄마가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새가빠지게 돌아만 다니다가 아빠한테 뭘 모른다는 핀잔을 듣고, 신촌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들에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렸다. 엄마, 아빠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설레는 표정이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본인들의 모습이 나오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과 엄마는 자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지 못했고, 아빠는 묵묵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또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GV때 할 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고 GV 타임. 아빠가 없을 때는 GV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출연한 가족들이 있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의 감정을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아빠에 대한 판단을 말하는 것 때문. 대부분 가족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도 서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딸로서의 생각과 연출자로서의 생각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둬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GV 시작.

(사진출처)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관객분들이 적 극적으로 질문해주셔서 참 좋았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두신 분들이 참 많구나 싶었고, 기독교 나 경상도 출신으로 고민 하는 이도 참 많구나 싶었다. 권은선 프로그래머님의 스피디한 진행으로 GV를 진행했다. 가장 인상적 인 질문은 팍팍한 현실들 뿐인데, 어디서 힘을 얻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정확한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이런 맥락) 그 질문을 받으니 생각이 났다. 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에 갇히지 말고, 나의 작은 상처, 의문에 갇히지 말고, 자명한 진실들을 바라보면 된다는 것. 이번 작업으로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한 것들을 한차례 정리가 되었으니, 과거의 기억 때문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것, 그런 것이 정리되었다. 나에겐 명확한 느낌인데, 이런 추상적인 문장으로도 이 느낌이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보고 아빠가 어땠는지 물어봐서 아빠가 직접 대답을 했다. '기업을 하다보면 이런 비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대답을 했다.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 집에 가서 마저 읽겠다고 했지 만, 자신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듯.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질문하는 사람들이나 GV 후 아빠나 나에게 와서 말하는 사람들의 늬앙스였다. 아빠가 훌륭하시다고 말하시는 분 들이 계셨지만, 단서를 붙이시는 분들이 많았다. '가난하지만 혹은 못 배웠지만' 그 늬앙스는 마치 가난 하거나 못 배운 사람들은 훌륭해지기 힘들다는 전제를 단 것 같았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빠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가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가난을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나였다. '가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지만, 어쩌면 관객들도 아빠의 가난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든 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또 아빠를 원망했던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좀 더 '가난'이란 단어를 강조 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그리고 좀 더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지만, 역시 '가난'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밝히고 나니 동정의 눈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과민한 반응일까? 대부분이 그랬다고 하면 오버일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몇 분의 어른들은 그런 말을 나와 아빠에게 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GV의 분위기는 좋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가셔서 대구 집으로 돌아가셨다. 카탈로그를 챙겨가신 아빠는 사람들에게 자랑 좀 하셨으려나. 여성영화제에 상영한 걸로 한 2년은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딴 일 하라거나, 뭐하고 다니냐고 묻지 않겠지?
Posted by cox4

3월 24일부터 3월 30일까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서울 홍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립니다. '그 자식...'도 인디다큐 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잇힝) 국내외 첫 상영입니다. 가편 시사 하면서 상영할 곳이 없다는 게 참 막막했었는데, 인디다큐에서 상영하게 되어 큰 힘이 되었지요. '상영'과 관련한 심정적인 정리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들르는 이 몇 명 없는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얼마나 홍보가 될지 모르겠지만, 자기 작품은 자기가 홍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박혀, 자기가 만든 작품 자기가 예뻐해주지 않으면 관객들이 알아줄리 없다는 말을 기억하며, 홍보 시작합니다.

어제 인디다큐 신작감독 모임에 갔었는데 상영 시간표가 나왔습니다. 제 작품은 66분이라서 [행복의 조건] 이라는 21분짜리 다큐멘터리와 함께 상영합니다. 의료와 관련된 다큐라는데 기대가 됩니다. 모두 손에 손잡고 놀러오세요. 극장이 의외로 크답니다. ㅎㅎ

인디다큐 홈페이지) http://www.sidof.org/

3월 24일 목요일 오전 11시
3월 28일 월요일 오후  8시

SYNOPSIS

에게는 가난한데도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아빠가 있다.
진보정당 지지자인는 그런 아빠의 태도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생각 아니 믿음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2010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향인 대구로 향한다.


DIRECTOR’S NOTE

'대구 보수꼴통 아저씨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선 그들이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농담을 가끔 듣는다. 그럼 나는 우리 아빠가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물음들이 가득 차올라 카메라를 들었다



어제 신작전 감독 모임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는데, 모두 흥미로운 분들이었습니다. 작품들도 신선하고 재밌는 내용이 많았고요. 인디다큐 상영표와 작품 소개가 나오면 꼭 챙겨보고 영화 보러 가시면 좋을듯. 특히 다큐멘터리에 관심 많으신 분들이라면! 저도 이번엔 많이 보고 꼼꼼히 기록해놓을 생각입니다.

여성영화제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섹션에 초청되었어요. [아이들]이란 류미례 감독님의 작품도 재밌어요. 다른 영화들도 재미난 거 많아 보이네요. 아직 시간표는 안 나왔는데 홈페이지 가셔서 나중에 확인해보시면 될 듯.
4월 8일  금요일 오후 5시
4월 12일 화요일 오후 5시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http://wffis.or.kr/wffis_12th

그리고 생각과 마음이 복잡할 땐, "인생, 되는대로"





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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