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극장, 움직이는 영화관'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daum.net/hwaldongsajin/5261602


인디다큐페스티발 2011 최고의 인기작은 애초 예상했던 대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었다. 3월 28일 저녁 8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의 상영관은 만석에 가까웠다.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손경화 감독은 "제목에 낚여서 오신 분들도 많을 텐데,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았나 모르겠다"고 인사를 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랬다. 낚여서 온 관객들이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 중학생이던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업에 관심을 두게 된 이후, 이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라온 도시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활동하는 딸과 '보수꼴통'의 도시 대구에 사는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 차는 짐작할 만 하다. 헌데 그 아버지는 가난하다. 딸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정면 배치되는 정당을 지지하는 아버지의 모순을 지역감정으로 간단히 설명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설득하겠다는 계몽적 의도가 딸에게 없진 않았을 것이다. 설득에 성공했나? 아니다. 30년 넘게 형성되온 아버지의 정치적 성향이 영화 한 편 찍는 동안에 바뀔 리는 없었을 터.

 

아버지와 딸이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재설정된다. 같은 '보수'로서 부자정당에 표를 몰아준 부산 재래시장 상인들의 SSM반대 싸움의 클립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리라 애초 마음 먹었던 딸은 그것조차 그만둔다. 알려주고, 가르치는 입장을 접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대화는 깊어 진다. 어느 순간, 딸의 카메라는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던 어린 날의 상처를 회상하는 아버지의 눈에 서리는 눈물을 포착한다. 그 시절의 좌절을 고백하는 아버지 앞에서, 자식들을 그러한 가난의 밑바닥에서 들어올리는데 일생을 바친 아버지 앞에서 관객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버지가 부자들의 정당은 가진 것이 많아서 부자집에 사람 꼬이듯 인재가 몰리기 마련이고, 그래서 믿을 만하다라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옹호한다. 영화바깥 쪽 사람들도 아버지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딸과 함께 아버지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의 '그 자식'을 달리 설정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이제 예기치 않게 한 '보수주의자'의 세계를 탐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대화의 시작을 알릴 뿐이다.

영화는 딸이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양도하면서 끝난다. 아버지가 질문할 차례. 딸이 대답을 해야 할 차례.

영화와 다른 '그 자식'을 생각하던 사람들은 또 생각한다. 딸의 자리에 앉은 이가 자기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딸이 태도를 수정한 것처럼 아버지들도 딸의 정치적 견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그 자식이...>같은 작은 통로들이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이것이 관계 변화의 좋은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미 아버지와 딸이 담 너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그 자식이...>는 보여주지 않던가. 아버지는 말했었다.  "정직한 사회, 부를 공평하게 누리면서 다 같이 행복한 사회, 그런 사회가 틀림없이 올 것"(인디다큐 프로그래머 이영진 씨네21기자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재인용)이라고.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듯이 <그 자식이...>는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각과 말들을 불러올 대화의 실마리이자 서두이다.

Posted by cox4

3월 24일부터 3월 30일까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서울 홍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립니다. '그 자식...'도 인디다큐 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잇힝) 국내외 첫 상영입니다. 가편 시사 하면서 상영할 곳이 없다는 게 참 막막했었는데, 인디다큐에서 상영하게 되어 큰 힘이 되었지요. '상영'과 관련한 심정적인 정리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들르는 이 몇 명 없는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얼마나 홍보가 될지 모르겠지만, 자기 작품은 자기가 홍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박혀, 자기가 만든 작품 자기가 예뻐해주지 않으면 관객들이 알아줄리 없다는 말을 기억하며, 홍보 시작합니다.

어제 인디다큐 신작감독 모임에 갔었는데 상영 시간표가 나왔습니다. 제 작품은 66분이라서 [행복의 조건] 이라는 21분짜리 다큐멘터리와 함께 상영합니다. 의료와 관련된 다큐라는데 기대가 됩니다. 모두 손에 손잡고 놀러오세요. 극장이 의외로 크답니다. ㅎㅎ

인디다큐 홈페이지) http://www.sidof.org/

3월 24일 목요일 오전 11시
3월 28일 월요일 오후  8시

SYNOPSIS

에게는 가난한데도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아빠가 있다.
진보정당 지지자인는 그런 아빠의 태도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생각 아니 믿음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2010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향인 대구로 향한다.


DIRECTOR’S NOTE

'대구 보수꼴통 아저씨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선 그들이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농담을 가끔 듣는다. 그럼 나는 우리 아빠가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물음들이 가득 차올라 카메라를 들었다



어제 신작전 감독 모임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는데, 모두 흥미로운 분들이었습니다. 작품들도 신선하고 재밌는 내용이 많았고요. 인디다큐 상영표와 작품 소개가 나오면 꼭 챙겨보고 영화 보러 가시면 좋을듯. 특히 다큐멘터리에 관심 많으신 분들이라면! 저도 이번엔 많이 보고 꼼꼼히 기록해놓을 생각입니다.

여성영화제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섹션에 초청되었어요. [아이들]이란 류미례 감독님의 작품도 재밌어요. 다른 영화들도 재미난 거 많아 보이네요. 아직 시간표는 안 나왔는데 홈페이지 가셔서 나중에 확인해보시면 될 듯.
4월 8일  금요일 오후 5시
4월 12일 화요일 오후 5시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http://wffis.or.kr/wffis_12th

그리고 생각과 마음이 복잡할 땐, "인생, 되는대로"





Posted by cox4

2011. 1. 20. 02:37 제작일지

37. 넘어서기

나의 이야기와 가족이 나오다보니, 드러내는 정도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니 정도보다 포장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가족들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고민들. 초반 그런 고민들에 흠뻑 빠져 중2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막판으로 가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중2병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자의식 과잉인 것은 진즉에 알고 경계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더라. 중얼중얼. 그러다보니 제작일지도 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리기도 수차례했다. 내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는데, 부끄러움을 못 견디는 걸 보면 확실히 과잉이다.

인디다큐에 내기 위해서 몇 주 편집을 했다. 아직 가편 시사를 한 번 더하고 수정도 할 것 같지만,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내일은 가이드 내레이션 녹음을 한다. 그래서 구성안을 다시 보고 내레이션 대본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어딘가 비겁한 구석이 있다. 과잉이었던 구성안이 부끄러워 하나씩 덜어내다보니, 이젠 스스로를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결코 담담하지 않다. 괜찮은 척 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지금의 영화가 아니라, 과거의 내 삶이다. 작은 어려움에 엄살이 심했다. 지금의 편집본을 보면 내가 과하게 엄살을 부리는 동안 고생한 가족들이 눈에 보인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엄살을 부렸던 나조차 감춘 것은 아닐까. 녹음을 앞두고 슬쩍 걱정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예민한 부분에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 덕분에 자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 상처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상처는 보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내 한계이다.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이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하찮아보이겠지만 나에겐 어마어마한 산이었던 상처 혹은 가난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다른 지점을 보고 싶다.

노홍철이 텐아시아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이들의 경험을 가장 쉽게 배우는 것이 대화라고, 그래서 자기는 낯선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나도 낯선이들에게 말 거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이유가 다르다.  나는 낯선이들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찾기 위해 말을 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넘어서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좁다. 이번 작업이 나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제발...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나보다. 내 안에 갇혀있을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모니터를 통해, 녹취록을 통해 계속 보게...

넘어서기가 잘 된다면, 나는 내가 화자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자기에게 갇혀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나의 경우엔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로 시작하는 문장의 글쓰기도 좀 줄게 되겠지. 이 포스팅도 과잉이지만, 병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치료는 시작된다고 했으니, 중2병을 인정하며 공개. 부끄러워하는 것도 부끄럽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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