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편집을 하는 중이다. 편집을 할 때마다 촬영했던 날의 나를 원망하게 된다. 왜 조금 더 많이, 풍부하게, 집중해서 찍지 못했냐며...[어머니]와 [두 개의 선] 촬영도 하고 있는데, 연출자들의 촬영에 대한 아쉬움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늘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편집에 들어가면 더욱 나를 미워하게 될텐데, 그 땐 도망가 있어야겠다. 나는 내가 촬영했기 때문에, 그 때의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책. 가장 아쉬운 장면은 선거 운동하는 장면과 선거 당일의 아빠의 모습이다.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해서, 혹은 너무 욕심을 내는 바람에 오케이 컷이 많지 않다. 편집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장면들이다. 거기다 촬영한 분량도 많지 않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그 때, 왜 삼각대를 세워놓고 그 논과 밭들을 스케치 하지 않았는지를 한참 아쉬워했다. 지난 일은 잊는 것이 좋지만, 아쉬운 것은 역시 아쉽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을 자주 한다. 개청춘 때도 그렇고, 그 전후의 작업들, 현재 하고 있는 작업들도 그렇고. 내가 지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함을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작업을 했다고 자부했다. 이번 작업에서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허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어떤 것에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오늘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 정도가 전부였어. 그래도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어.'라는 태도의 오만함. 그것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부끄럽다면, 그런 태도가 어디에서 왔는지(오만함과 자기 합리화) 알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묵혀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쉽게 말하며, 내 자신을 속이는 대신...

어느 정도 가편이 나왔다. 이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씬은 한 두 씬 정도인 것 같다. 못나보이고 삐뚤삐뚤해보이고, 숨기고 싶고 그런 장면들. 새롭지도 않은 장면들. 그렇지만 나에게 소중한 것은 29년 동안의 내 삶의 많은 것들이 응축되어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나오는, 아는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정말 찍고 싶지 않았지만, 한 텀을 정리하고 싶었다. 요즘 드는 고민은 나의 한 텀을 정리하는 고민을 다큐멘터리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 과잉의 다큐멘터리가 되어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것. 넘치는 것들을 걷어내고, 간과했던 점들을 짚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때다.

근데 자꾸 망설여진다. 후덜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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