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식 이야기는 풀릴듯 풀리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이유는 촬영과 녹취를 안하고 짱구만 굴리고 있기 때문이고 풀릴 것 같은 이유는 그걸 안해봤기 때문에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 아침 문득 몇 개월이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집중해서 해야 될 때이다. 우선 기획의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버리고 구성안을 작성해야 한다.

주말동안 대구에 갔다왔다.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에 갔다.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아이 키우기에 전념해야만 하는 친구들의 생활이 좀 피곤해보이긴 하였지만, 그녀들이 불쌍해한 것은 돈 못 벌고 결혼도 못한 나였기에 할 말이 점점 사라져갔다. 당연하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고, 경화는 제일 늦게 갈거라 안심이라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씁쓸해지는 것은 왜일까. 결혼한다고 하면 뭐하는지 돈이 많은지를 즉각적으로 물어보고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은 단지 나뿐일까. 어쩐지 쓸쓸했던 만남이었다. 나에게는. 그녀들의 삶의 기준에 못 미치는 내가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런 삶이 즐거워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왜 자꾸 할 말이 없어지는지... 뭐 이건 결혼에 관한 생각이라서 그냥 적는 것이다.

진짜는 다음날 결혼식을 마치고 기차로 올라오는 길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중학교 친구 둘과 친구의 남편, 나까지 넷이 KTX동반석을 타고 왔다. 우리 셋은 대구 출신이고, 친구남편은 안동출신의 회사원이다. 친구남편이 아이폰으로 신문을 보다가 '난 조선일보만 본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러자 내 친구 A는 자신은 한겨레를 보는데 요즘은 조금 동아일보가 좋아진다고 했다. 석사논문으로 가족과 대중문화 관련한 걸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문화나 한부모 가정 같은 사회적 약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내 기준에서는 당황스러운 발언이라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 용산참사도 돈 받았으면 된 거 아니냐고도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뉴라이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친구라고 대답하고 싶다. 생각의 기반이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에, 또 내가 설득할 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혹은 유난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창문을 바라보다 다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십여년을 알아온 우리도 생각의 갈래가 나눠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를 내 기준에서 마냥 틀리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친구의 기준에서는 내가 틀린 것처럼 보일테니까.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야기조차 건네지 못하는 나의 태도인 것 같다.

정말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이 사회의 기준에서. 무엇이 설득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만들었을까?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설득할 엄두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그 자식...] 다음 작업으로는 젊은 층의 정치의식에 대한 걸 해보고 싶다. 서로 다른 당에 선거하는 젊은 사람들과 투표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 아빠가 투표하는 날 촬영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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