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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3 05. 심난한 마음
  2. 2010.02.23 04. 머리가 복잡하다. 단순해져야 할 것들
  3. 2010.02.14 03. 명절 보내기
어제 쌍용차 관련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 시사회가 있었다. 내가 조연출 한 작품이다. 조연출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일들을 했다는 게 맞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사실적이니까. ㅎ 상영이 시작하기 전에는 사고 날까봐 걱정이 되었다. 늘 상영은 마음을 졸이게 한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이 모였고 그 시간이 소중하며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조합원 분들의 말씀이 제일 멋졌던 것 같다. 이영호 의장님의 담담한 이야기도 언론담당이신 분의 이야기도. 특히 쌍용차 투쟁은 이제 A/S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A/S에 참여한다고 말하기도 뭐하게, 쌍용차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 싸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당시에 몰랐던 것 같다. 조직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역사와 고민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내 고민의 폭이 좁고 얕았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한동안 책을 보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만 봤는데 생각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시기를 벗어나고 나의 과거에서도 좀 벗어나서 이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해야 할 때라는 걸 알고 있다. 그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런 저런 것을 흡수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책도 읽는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작이 될 것 같다. 내 고민이 깊어지고 어느 정도 정리되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 어제는 이상하게 심란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 오랫동안 운동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심란해진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대중이란 무엇일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살 것인가? 그리고 어김없이 생각나는 운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온 나의 25년간의 인간관계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이 생각난다. (....) 뭐 그런 생각에 파묻힌 어젯밤이었지만 요즘은 조금 어른이 되었는지 덜 휘둘리는 것 같다. 이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운동을 모른 채 살아왔지만 운동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했던 운동의 경험을 이제부터 축적해갈 필요는 없다. 각자에게 운동의 방식이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하는 활동들이니,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치열하게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괜한 인정욕구나 열등감에 시달리지 말고, 나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먼저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제 태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단편으로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단편을 잘 만들 자신도 없다. 단편이 더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단편을 만들고 싶다.

핵심은 두 개인데,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어떻게 생성되었느냐와 가난한 우리 아빠는 왜 한나라당을 지지할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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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손낙구가 막 만든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대부분 그의 치밀하고 끈덕진 연구에 감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글이었다. 실제로도 대단하다. 조기숙 교수의 지적도 적절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머리가 복잡한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복잡한 것은 이런 책이 나왔다고 감탄하는 사회학계의 반응에 놀랐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책이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다들 그렇게 연구하는 줄 알았다. 선거 전략을 짤 때는 그렇게 치밀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고 계획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 말과 추측뿐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손낙구씨는 연구를 통해 서민층은 투표율이 낮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민주당을 지지하는 계층투표를 해왔다고 발표했다. 조기숙 교수는 그것은 생태학적인 오류가 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민은 기존체제에 포섭되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적고 먹고 살기 바빠서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뭐 대충 글 참고 하면 이해될 것 같고, 나도 아직은 조기숙 교수의 논리에 더 동의가 된다. 실제로 나의 아빠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어느 논리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투표하지 않은 블루오션인 서민층'을 어떻게 진보진영에서 설득해낼 것인가가 관건이란 말을 바이커란 블로거가 했다. 그 말이 진짜 옳다. 어쨌든 지금 체제하에서 투표는 거의 유일한 정치 표현의 수단이고 그것을 외면할수록 서민들에게는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수가 많은 서민층의 투표율이 높을 수록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에 유리했던 것은 명백하므로.

그렇다면 나는 이런 조사들이, 더구나 계급배반 투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 시점에,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의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냐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이 선거 지형 전체를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유도 없다. 욕구도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경험으로 지역주의와 계급배반 투표의 행위를 분석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겪어야 하는 모순을 극복하고 싶을 뿐이다.
결론이 명쾌하게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주변이나 나의 사유로 파고들어야 한다. 넓어지는 것은 어려운 길이다. 글로도 분석되지 않는데 하물며 디테일한 인터뷰는 더 하다.
다만 인터뷰이를 잘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전체 흐름을 끌고 가는 것은 나의 생각 변화와 의문해소이다. 계급배반 투표니 지역주의니 그런 말들에 빠지지는 말자. 분석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다만 거기서 맥을 짚을 수 있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분석을 정확히 읽고 해석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나의 분석과 판단이 중요하다.

흑흑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단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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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2010. 2. 14. 00:41 제작일지

03. 명절 보내기

설 연휴를 맞아서 대구집에 내려왔다. 서울에 가서 2년 정도는 명절에 내려오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친척들이 북적거리는 명절보다는 평일이 좋았다. 그러다보니 집에 올 일이 점점 줄었고 일년에 두어번 정도 가족들 얼굴을 보았다. 평소 연락도 잘 안하는 편이라 이러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명절을 챙기고 있다. 가능하면 선물이라도 하려고 하고.

이번 설에는 친구들 안 만나고 집에서 뒹굴뒹굴 쉬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집에서 먹고 테레비만 봤더니 저녁에는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루종일 테레비만 봤더니 멍하고 기분도 별로고. 가족들이 저녁에 하나둘 들어오니 그나마 나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골목길에서 들리는 사람들 소리, 언니가 쇼핑몰 구경하는 소리, 엄마와 아빠가 드라마 보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구에서 살 때의 느낌이 났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이 공간이 비로소 체감되기 시작했고 여기서도 뭔가 생산적인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다가 컴퓨터를 켰다. 네이버에 뜬 뉴스를 클릭하지 않고 천천히 본다. 인터넷을 하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하더니 박근혜라는 이름이 적힌 기사를 읽고 있다. 낮에는 조선일보를 펼쳐놓고 보던 아빠. 당연히 그런 류일줄 알았는데 프레시안 기사이다. 네이버에 뜬 기사를 보고 클릭해서 보는 것 같다. 조선일보에서 말하던 논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텐데 찬찬히 읽으신다. 그러고 또 다른 기사들을 검색한다. 아빠가 그 기사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아빠가 인터넷을 배우지 않았다면 프레시안의 기사를 볼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대학교 다닐 때 한겨레를 구독했었다. 우리집에 오는 신문은 조선일보와 한겨레. 그러다 아빠가 조선일보를 끊었다.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받았는지 아니면 돈이 아까워서 그랬는지 기억은 안난다. 나는 한겨레를 끊지 않았고 아빠는 아침에 자연히 한겨레를 보게 되었다. 묵묵히 한겨레를 보면서 마지막엔 한 두번씩 고래를 저었던 것 같다. 나한테 한겨레를 본다고 뭐라고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내가 신문값을 못 내어서 수금하는 아저씨가 찾아오는 바람에 아빠가 한겨레 신문값을 내어주었다. 조선일보 구독자가 한겨레 신문값을 내는 그런 이상한 상황. 그건 내가 아빠 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게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파고들 수 있는 지점이다.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큰 개념인 부녀관계. 그걸 프레임으로 시작해서 정치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빠가 프레시안 기사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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