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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8. 15:26 제작일지

11. .......

글쎄....

내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아빠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아빠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나를 정면으로 볼까.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을 만들고 난 후 후회하는 정도와 반비례하는 것들일 것 같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생활을 5년 넘게 하고 있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했던 게 5년 전이었단 이야기. 대구에 내려와서 일주일을 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촬영하면서 가족들과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 내가 이렇게까지 참을성이 없는지 몰랐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친해도, 또 룸메들과 함께 살아도 내 공간이란 것이 존재했다. 내 공간에 들어올 때면 물어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가족들이 내 공간에 벌컥벌컥 들어오고, 일을 하고 있어도 이것저것 막 시키거나 말을 건다. 내가 말을 해도 대꾸가 없으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가족들과의 생활이란 게 이런 거였지. 새삼 깨닫고 있다. 이게 꼭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5년 동안 어떤 생활공간에서 지냈는지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이 되어가니 좀 익숙해진다. 농담하며 밥을 먹다가 갑자기 화를 내다가 또 갑자기 진지한 말을 하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말이다. 서울 친구들이 나한테 왜 화를 내냐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냥 말한 거였는데 말이다. 이제 내가 서울 사람들의 친절한 말투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대구 사람들의 버럭버럭하는 것 같은 말투에 깜짝 깜짝 놀란다.

동생이 일하는 카페에 왔다. 동생은 없지만 집중해서 기획서를 정리하려고 왔다. 그나마 대구에 온 것이 좋은 것은 동생이 예뻐서이다. 일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도 커피를 사서 오고 내가 와서 참 좋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내가 와서 좋은 것은 그동안 자기가 하던 집안일을 내가 해주기 때문이다. 같이 자전거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빠를 인터뷰 하려고 며칠동안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계속 바쁘다면서 안 해주거나 귀찮아했다. 어제도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해서 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음에 하자고 했다. 울컥. 며칠동안 눈치보며 기다렸는데 나는 이 일이 중요한데 그걸 몰라주는 아빠가 서운했다. 사실 인터뷰를 안 해주는 것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에게 '경화야, 서글프다. 카메라 들고 그게 뭐고' 라고 말하면서 혀를 차거나 돈도 안 되는 일을 한다며 한심한듯 이야기하는 것이 서운했다. 그동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 설명하지 못한 탓도 있고, 이번 작업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설명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는 것을 몰라주는 것 같았다. 그런 서운함이 갑자기 몰려와 당장이라도 서울로 올라갈듯 짐을 싸고 씩씩거렸다. 인터뷰하는 사람이 나중에 하자고 하는데 화를 내는 것이 황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촬영자의 입장에서보다 딸의 입장에서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도 이건 내가 화를 낼 일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이건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들이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쿵쾅거리는 마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빠가 인터뷰 빨리 하자고 했다. 머리끝까지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갑자기 대화하는 인터뷰를 하자니 머쓱했다. 하지만 아빠는 개의치 않는 얼굴로 빨리 하자고 재촉을 했고 못 이기는 척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한참 하는 중에 아빠가 옛날일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빠의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양심적으로 살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윤리적인 양심, 경제적인 양심, 신앙적인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남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다고 했다. 나를 심하게 때렸던 일, 동생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때렸던 일, 엄마와 심하게 다퉜던 일들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명하듯 나에게 이야기하던 아빠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새벽까지 계속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 무엇을 전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적절한 태도로 이 작업에 임하고 있는 걸까. 아빠가 그렇게 나에게 자신의 삶을 변호한 것은 내가 아빠에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태도로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를 이해하려고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척하는 내 모습에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구성안은 내가 화자가 되어서 내레이션을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이었는데, 오늘 새벽 나의 내레이션을 많이 버리고, 내 생각을 많이 버리고, 조금 더 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줄이자. 아니 이미 삼켜져버렸다. 지금까지의 촬영은 귀로는 듣지만 마음으로는 듣지 못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지만 나는 아빠의 인터뷰를 사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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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2010. 4. 5. 21:57 제작일지

10. 빡센

무려 새벽에 일어나서 촬영할 준비를 했다. 아침에 엄마가 가게를 열 준비하는 걸 촬영하면서 몇 가지를 물어볼 생각이라서. 엄마의 대답은 예상대로였지만 훨씬 간결하고 단호했다. 정치에 냉소적인 엄마. 그리고 스케치 촬영을 좀 했다. 대구 전경을 촬영하느라고 케이블카를 탔는데 거기서 00고등학교 선생님 무리를 만났다. 앞산 밑에 있는 자유총연맹에서 하는 통일교육을 받으러 학생들과 왔다가 선생님들은 앞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지난 정권 때는 교육이 덜하고, 자유총연맹 건물도 낡아서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이번 정권이 들어서자 교육도 강화되고 자유총연맹 건물도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학교는 보수적이라 어쩔 수 없다며 걱정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김대중과 노무현 때는 덜했다는 이야기. 심심치 않게 김대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내려오는 길에 자유총연맹을 지나다가 탱크 앞에서 라면을 먹는 고등학생들 무리를 발견하고 망설이다가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아이들은 지역감정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와 그림들.

촬영 기간이 짧기 때문에 가능할 때 많이 찍자면서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촬영을 했더니 오후가 되자 녹초. 집에서 잠깐 쉬다가 엄마와 가구점에 들러 이것저것 사고, 다시 카페로 왔다.

촬영하러 왔지만 이사에 각종 집안일과 심부름, 그리고 빡센 촬영. 몸이 힘들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인터뷰이들이 쏙쏙 해줘서 즐겁기도 하다.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다. 부지런히 촬영하자. 생각은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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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대구에 내려왔다. 어제 아침에 내려와서 부모님이 이사하는 걸 촬영하였다. 빚으로 샀던 집을 파시고 몇 년만에 다시 장만하신 집이다. 낡은 아파트이긴 하지만 집을 샀다는 것으로 마음 편해하시는 것 같았다. 굳이 이사를 촬영한 것은 아빠가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로 듣고 싶은 것, 그리고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집의 소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정치적인 판단으로 이어지는지를 물어보려고 했었다. 그리고 지방인 대구에서조차 이제야 집을 마련한 부모님의 경제적 조건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어제 아침에 촬영을 하고 짐을 새 집에 내려놓고, 계속 짐을 정리하고 걸레질 하느라 팔이 빠질 것 같아서 인터뷰는 못했다. 내일 아빠가 교회에 갔다오면 할 생각이다. 그래도 촬영하면서 재밌는 게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 그래도 뭐라도 하는구나 싶어서 안심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안타깝게 보신다. 어제도 카메라를 꺼내 아빠를 찍으니 한참 카메라를 보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아이고 경화야, 서글프다.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고..." 정말 서글픈 표정으로 보더니 돌아서서 이삿짐을 정리하셨다. 찍든 말든 전혀 의식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촬영할 때도 느낀 거지만 부모님은 카메라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본다. 다른 촬영을 하면 아무리 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나를 봐주지 않고 늘 카메라만 보고 의식해서 약간 서운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그게 익숙해졌는지 카메라를 보지 않고 나를 훑어보는 아빠 때문에 살짝 아니 사실은 많이 당황했다. 나는 아빠와 대화할 수 있는 레벨이 될까 싶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이삿짐을 정리하던 남동생이 카메라에 많이 잡혔는데 아빠가 종종 사라지는 바람에 동생이랑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다. 김대중하면 뭐가 떠오르냐니까 성대모사를 하고, 군대에서 이명박 찍은 이야기하고, 정치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동생의 말에 좀 충격을 받았다. 더 큰 충격은 오늘 아침 동생의 침대에서 본 책이다. 나는 내일 서점에 가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사서 아빠와 대화할 생각이었는데, 동생이 자기 전에 읽는 책은 이병철 삼성회장의 자서전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돈 주고 산 것 같다. 오마이갓.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인가. 걱정이 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동생을 가르치려고 들것 같고, 동생은 설득되지 않을 것 같다는...동생이 많이 찍히는 바람에 아빠를 제치고 새로운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걱정, 아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이 다큐멘터리에 노출 될 가능성. 동생과 형부, 엄마, 아빠 모두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즐기는 타입들이다. 연기하거나 개그를 하려고 한다. 임신중이라 살이 쪄서 카메라를 싫어하는 언니 말고는 모두 카메라 앞에서 무방비 상태인데 이렇게 찍어도 되는 것일까? 진지하게 다큐멘터리의 기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동의를 받아야겠다만 진지하게 생각해줄 것 같지 않다. 여기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그냥 좀 다른척하는 가족의 포지션이다. 나의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으시다. 흐.

집에서 뒹굴거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있다보니 긴장이 조금씩 줄어간다. 긴장이 줄면 촬영도 게을러지기 때문에 몸을 조이기 위해서 동생이 알바하는 카페에 나왔다. 이사온 동네는 대구에 처음 왔을 때 살았던 동네다. 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꾸물거리지 말고 부지런히 촬영하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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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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