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낙구가 막 만든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대부분 그의 치밀하고 끈덕진 연구에 감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글이었다. 실제로도 대단하다. 조기숙 교수의 지적도 적절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머리가 복잡한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복잡한 것은 이런 책이 나왔다고 감탄하는 사회학계의 반응에 놀랐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책이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다들 그렇게 연구하는 줄 알았다. 선거 전략을 짤 때는 그렇게 치밀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고 계획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 말과 추측뿐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손낙구씨는 연구를 통해 서민층은 투표율이 낮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민주당을 지지하는 계층투표를 해왔다고 발표했다. 조기숙 교수는 그것은 생태학적인 오류가 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민은 기존체제에 포섭되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적고 먹고 살기 바빠서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뭐 대충 글 참고 하면 이해될 것 같고, 나도 아직은 조기숙 교수의 논리에 더 동의가 된다. 실제로 나의 아빠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어느 논리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투표하지 않은 블루오션인 서민층'을 어떻게 진보진영에서 설득해낼 것인가가 관건이란 말을 바이커란 블로거가 했다. 그 말이 진짜 옳다. 어쨌든 지금 체제하에서 투표는 거의 유일한 정치 표현의 수단이고 그것을 외면할수록 서민들에게는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수가 많은 서민층의 투표율이 높을 수록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에 유리했던 것은 명백하므로.

그렇다면 나는 이런 조사들이, 더구나 계급배반 투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 시점에,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의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냐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이 선거 지형 전체를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유도 없다. 욕구도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경험으로 지역주의와 계급배반 투표의 행위를 분석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겪어야 하는 모순을 극복하고 싶을 뿐이다.
결론이 명쾌하게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주변이나 나의 사유로 파고들어야 한다. 넓어지는 것은 어려운 길이다. 글로도 분석되지 않는데 하물며 디테일한 인터뷰는 더 하다.
다만 인터뷰이를 잘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전체 흐름을 끌고 가는 것은 나의 생각 변화와 의문해소이다. 계급배반 투표니 지역주의니 그런 말들에 빠지지는 말자. 분석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다만 거기서 맥을 짚을 수 있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분석을 정확히 읽고 해석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나의 분석과 판단이 중요하다.

흑흑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단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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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기사원문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찰스 부스(Charles Booth)는 개인비용을 들여 12년간 런던 주민을 대상으로 사회조사를 실시했다. 부유했던 그가 이런 조사를 실시한 것은 '런던 노동자 계층의 25%가 극도의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회민주주의동맹(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직)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회민주주의동맹의 주장보다 더 많은 35%가 '절대빈곤층'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런던 주민의 생활과 노동>(Life and Labour of the People in London)(총 17권)이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연구는 "사회정책과 경제과학의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손낙구씨는 1659쪽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후마니타스)를 쓰면서 9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찰스 부스가 생각났다고 했다. 

 

"가난한 동네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부자동네보다 훨씬 낮다"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저자 손낙구씨.
ⓒ 남소연
손낙구

'주택자산'을 중심으로 계층과 투표행태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는 기념비적인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이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 연구를 본 적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노동운동가들이 운동론에 관한 책만 썼지 서민과 관련한 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작업은 중요한 전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손씨는 '타지 주택 소유 여부'와 '거주층' 문항이 추가된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행정안전부의 다주택소유자료,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자료 등과 대비해 수도권 1186개 동네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목은 '주택·학력·종교와 투표(선거)의 상관관계'이다. 

 

손씨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집을 가진 사람,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 아파트에 사는 사람, 대학 이상 학력자, 종교가 있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한나라당을 택한 비율도 높았다. 반면 무주택자, 단독주택 등 비아파트 거주자, 1인가구, (반)지하거주자, 저학력자, 종교가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고,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에 투표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와 가장 낮은 동네 각각 10곳을 비교해보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기준). 전자의 평균 투표율은 67%인 데 반해, 후자는 44%에 그쳤다. 그리고 정당별 득표율의 경우 전자에서는 한나라당이, 후자에서는 민주당(+열린우리당)이 더 높았다. 

 

그리고 전자는 84%가 집을 가졌지만, 후자는 26%만이 집을 갖고 있었다. 전자는 아파트 거주자가 98%이고, 후자는 고작 5%에 불과했다. 대학 이상 고학력자의 경우 전자가 86%이고, 후자는 50%로 나타났다. 전자는 64%가 종교를 갖고 있었지만, 후자는 49%에 그쳤다. 특히 투표율이 높은 부자동네에서 천주교 신자 비율(25%)이 개신교(24%)나 불교(14%)보다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결과는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해 보수정당에 표를 준다'는 '계급 배반 투표론'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임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이 철저하게 계급·계층투표를 해왔다는 것이 손씨의 분석 결과다. 특별히 '가난한 동네'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부자동네'보다 훨씬 낮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과 구로구 가리봉2동을 예로 들어보자. 아파트 거주자가 100%인 잠실7동은 평균 69%, 무주택자가 77%인 가리봉2동은 평균 45%의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율에서 무려 24%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도권 전체에 걸쳐 나타났다.

 

이와 관련, 손씨는 "부동산 문제가 악화된 탓에 국민들이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닌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전체 국민의 55%가 한 집에 5년 이상 살지 못하고 있었고, 셋방 사는 국민의 경우는 그 비율이 80%에 이르렀다. 특히 셋방 사는 가구 중 절반 이상은 최소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에 한 번씩 떠돌며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이지만, 투표 참여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 곧 떠나야 할 곳일 뿐이다. 안정된 동네가 사라지고 정치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동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투표율이 오르기는 어렵다. 특히 셋방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가 더 약할 수밖에 없다."

 

이어 손씨는 "어느 정당도 집 없이 셋방에 살거나 혼자 살거나 심지어 (반)지하나 비닐집에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니 결국 이들이 투표를 아예 포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씨는 "문제는 계급 배반 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 자체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에 있다"며 "이 점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를 할 경우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이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지 못한 정치 또는 정당체제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최장집 명예교수는 최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즉 정치적으로 대표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괴리와 균열"이라며 "이 투표하지 않은 사람, 즉 '얼굴 없는 시민'이랄까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가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통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대안이라는 진보정당의 경우 자신만의 확실한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씨는 "진보정당은 평생을 같이할 임자를 못 만나고 있다"며 "임자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외연확대에 앞서 계층정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10일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손낙구씨 인터뷰 전문이다.

 

"진보정치는 자신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에게 '무심'했다"

 

  
노동운동가 출신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 후마니타스
손낙구

- 왜 이런 연구를 시작했나?

"국회에 있으면서 서민과 관련이 있는 부동산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처음 들여다본 건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단군 이래 한번도 조사된 적이 없다. 그러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때부터 거주층을 묻는 질문이 추가됐다. 지상에 사는지, 지하에 사는지, 옥상에 사는지의 질문이 추가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어디에 사는지를 알게 됐다.

 

2006년엔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옥상에 사는 사람들, 판잣집이나 움막, 동굴에 사는 사람들과 관련된 자료를 요구했다. 받아보고 나서 깜짝 놀랐다. 반지하 등에 사는 사람이 160만 명이나 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것이 던지는 바가 많다. 노동운동도 20년 가까이 했고 진보정치에도 복무했는데, 수도권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는지 몰랐다. 부끄러웠다. 진보정치가 자신들이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이 아니라 '무심'했다.

 

그런 통계를 보면서 이걸 동네별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땅 위에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려면 어느 동네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정당이나 사회운동이 지역에서 활동할 때 이런 사업을 우선해야 한다.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정당이나 사회운동을 하면 되겠나?"

 

- 방대한 통계자료를 분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보통 시군구까지만 분석해서 올려놓는다. 그런데 나는 읍면동까지 통계를 뽑아달라고 요구했다. 234개 시군구별로 온 통계를 3573개 읍면동까지 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너무나 궁금했는데 몇 달이 지나서 결과가 왔다. 과천시 문원동이나 강남 세곡동은 35%가 지하에 살고 있었다. 강남구나 과천시는 잘사는 동네인데 지하에 사는 사람의 비율이 제일 높았다. 그리고 강남 개포1·2동은 판잣집, 움막, 비닐집에 사는 사람의 비율이 전국 1, 2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에 구룡마을이 있더라.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읍면동별로 보니까 동네 특성들이 다양하게 드러났다. 기존에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 나왔다. 그래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동네 전체를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담당공무원이 '보좌관님,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고생하냐'고 말하더라. 읍면동까지 통계를 내려면 다른 일은 중단하고 컴퓨터를 4시간 돌려야 한다. 나도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자료를 모았다.

 

앞서 얘기한 통계를 확보하니까 동네를 보는 감이 잡혔다. 반지하 통계로는 감이 잘 안 잡혔다. 2005년 조사 때 타지 주택 소유 여부를 묻는 문항이 추가됐다. 그 항목이 추가됨으로써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 지금 셋방에서 살고 있지만 어딘가에 자신의 집이 있는 '유주택 전·월세 가구'도 새롭게 드러났다. 자기 집에 살든, 친척집 등에서 무상으로 살든, 셋방에서 살든 어딘가에 집이 있는 사람들을 알 수 있다. 주택 소유관계가 정교하게 드러난 것이다.

 

동네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에는 인구수, 성비, 학력, 주택소유, 종교, 외국인 비율 등 8가지가 있다. 그런 지표들은 시군구까지만 적용됐는데, 그걸 동네에까지 적용하니 여러 가지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16개 시도 주택지도를 만들어봤다. A4로 350쪽이 돼서 겁을 먹었다. 16개 시도가 이런 정도면 234개 시군구를 하면 몇 쪽이나 나올까? 게다가 3573개 읍면동까지 지도를 만들면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하지 않을까? 자료를 확보해놓고도 엄두를 못냈다."

 

"부자동네는 한나라당, 가난한 동네는 민주당을 많이 찍어"

 

- 특히 강남이 새롭게 보였겠다.

"2008년 총선 때다. 단병호 의원 보좌관이었던 신언직(현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강남갑에 출마했다. 무슨 생각으로 강남에 출마했는지 걱정이 되더라. 그래서 도와줄 생각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가지고 강남갑 동네를 돌려봤다. 그리고 역대선거에서 강남갑 동네별 투표성향 자료가 선관위에 있어서 연결해봤다. 그런데 동네마다 민주노동당 득표율이 달랐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많은 동네에서는 민주노동당 득표율이 조금 높았다. 반면 잘사는 동네에서는 낮았다. 투표소별로 봤더니 20%가 넘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도 주공아파트가 있었지만 12평, 13평으로 좁았다. 또 셋방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세도 다른 곳에 비해 쌌다. 그런 사람들이 유권자였다. 이들은 재개발이나 재건축도 반대한다. 하지만 대치동이나 압구정동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득표율은 형편없었다.

 

강남 좌파가 다른 좌파가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대학교수나 대학생들의 표가 아니라 강남에 사는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찍고 있었다. 강남에 살더라도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처지에 따라 투표율이나 득표율도 달랐다. 강남갑에는 집주인보다 셋방에 사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강남에 살지만 셋방에 살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남에 사는 세입자들의 생활상 어려움을 가지고 강남 서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런 강남 서민을 대변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연구를 통해 내린 중요한 결론 중 하나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철저하게 계층·계급투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 배반 투표론'이라는 기존의 통념(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서울의 경우 동네 투표율과 8개 지표를 연결하니까 (동네별 특성과 투표율 등의 상관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편이 괜찮은 동네에서는 투표율이 높고, 어려운 동네는 투표율이 낮았다. 정당 득표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형편이 괜찮은 동네에서는 한나라당을, 어려운 동네는 민주당을 많이 찍었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는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주택, 학력, 종교 등의 지표를 다 돌려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통계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들은 투표를 많이 하거나 안 하는 것일까? 부유한 사람들이 투표도 많이 하고, 아파트에 살고, 학력도 높은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투표를 안 하는 사람이 많을까? 노동운동할 때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통계를 분석하면서 보니까 이 사람들은 이사를 아주 많이 다녔다.

 

투표율은 주거생활 조건과 관련이 있었다.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니까 자기 동네가 아니었다. 그러니 동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뿌리 뽑힌 삶으로 살아온 것이다. 결국 국민이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들은 한국 정치를 꿰뚫고 있었다. 부유층과 가난한 사람은 각각 자기 처지에서 정치행위를 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투표 해봤자 뭐하냐' 이런 것이다. 투표를 안 한 동네일수록 민주당 등 야당 지지율이 높았다. 투표율이 올라가면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득표율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투표를 열심히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를 안 하거나 투표를 하면 상대적으로 야당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투표를 안 하는 행위 자체가 뚜렷한 정치행위였다. 자신들을 대변해줘야 할 야당이 투표를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못해 투표를 안 하는 것이다. 투표를 안 하는 사람의 존재, 투표율의 변화는 정치학의 중요한 주제인데 이번 동네 분석을 통해서 투표를 안 하는 사람의 성격이 드러났다."

 

-이번 연구는 수도권에 한정돼 있는데 비수도권에서도 그러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초고를 넘긴 후에 집에서 비수도권도 통계를 돌려봤다. 수도권에서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주택소유율과 투표율의 상관관계는 높았다.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을 다 해봐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수도권 모델'을 전국적으로 적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투표율과 주택(자산)을 중심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정당 득표율에선 난관이 있다. 호남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3% 정도밖에 안 돼서 그것으로 무얼 해볼 수 없었다. 영남의 경우 2004년 탄핵에 반발해 노무현 구하기가 이루어지면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치면 20~30% 정도 된다. 지역주의를 개입시키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수도권은 수도권이 갖고 있는 도시적 성격이 반영된 것이다.

 

전국의 읍면동에서 '동'이 붙은 동네는 도시적 특성을 갖는다. 유권자의 80%가 동에 산다. 전국에서 동만 추려 돌려보니까 주택소유와 투표율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았다. 주택 소유와 한나라당 득표율의 상관관계도 수도권만큼은 아니지만 꽤 높은 현상이 발견됐다. 주택소유와 투표율, 한나라당 득표율 세 지표의 상관관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왔다. 다만 학력이나 종교는 수도권과 달랐다.

 

결론적으로 유권자 80%가 산다는 지역(도시적 특성을 가진 지역)에서 수도권과 닮은 현상이 발견됐다. 이 책이 수도권에 한정해 얘기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3분의 2 정도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네.
ⓒ 후마니타스
손낙구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10개 동네.

Posted by cox4
손낙구의 역작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가 향후 선거담론에 끼칠 영향은 아주 클 수밖에 없다. 책을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몇몇 매체에 실린 북리뷰만 본다면 잘 살든 못 살든 계급투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이 책 이후로는 기존의 계급배반투표이론, 즉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일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설령 하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전제나 배경설명을 깔아야 가능하게 됐다. 아무튼 계급배반투표이론은 설득력이 떨어지며, 가난한 사람일수록 투표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밝혀졌다고 한다(물론 이 '실증'에 대한 '검증'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수도권에 한정된 조사라는 점과 극우/보수정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자신의 지지를 숨기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 등 여러 요소들이 공정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관련해 박상훈은 "수도권 하층의 불안정한 주거현실이 정치의식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을 한다(<한겨레21> 798호). 일리 있는 얘기이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몇해 전에 내가 속한 당의 지역 활동을 왜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을까, 아니 열심히 할 생각이 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개인적인 이유는 '지역정치에 대한 마인드가 후진데다 게을러서'이고, 사회적인 이유는 '언제 이사갈지 몰라서'였다.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울생활 십여년 동안 지속되어온 불변조건이다. 정치공동체 형성의 조건이 일정기간의 정주라면, 나는 언제나 정치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던 셈이다.

이 책이 도드라지는 지점은, 현행 선거제도나 이를 떠받치는 의사대표원리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계급배반투표 가설 자체를 논파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거관련 담론들이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는 어떤 명제, 즉 '각 계급의 투표율이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는 명제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계급을 배반한 투표'가 아니라 '투표를 배반한 계급'이다. 과거의 정치가 적대를 드러내고, 조직화하고, 승리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면 현대의 정치가 직면한 문제는 정치적 적대 자체가 증발해버리는(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치적 적대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과제와 정치적 적대에서 승리하는 과제, 요컨대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각각의 과제는 공히 계급적 관점에서 계급구조의 역동적 현실-flow를 명확히 파악하고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것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데,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는 그런 논의의 드물고도 중요한 정초가 될 수 있는 책이다. 또 계속 보완되고 축적되어야 하는 책이라는 점도 물론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의 기존전략과 크게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어쨌든 투표율이 높은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계급배반이론에 따른 몇 가지 전략적 고려들을 좀더 줄이고 투표율 제고에 좀더 집중하게 될 수는 있겠다.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라는 행위 하나를 하는 데도 부유한 사람들보다 더한 심리적, 경제적 자원을 소모하게 된다. 불평등은 이 지점에서부터 '이미' 발생한다. 돈 많은 정치공동체와 가난한 비-정치공동체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별시민의 정치적 대표성을 논하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이명박 찍은 국민들이 개새끼"라고 욕하고 자기 블로그 대문에다 "나는 찍지 않았'읍'니다"라고 써놓는 등의 짓거리가 무의미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투표율의 저하가 계급과 거주지역으로 표현된다면 그것은 보장되어야할 정치적 의사표현이 아니라 반드시 개선해야할 사회문제가 된다. 정치적 의사표현의 '향방'보다  더욱 민감하고 어쩌면 중요할 정치적 이슈는 바로 정치적 의사표현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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