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5. 01:52 제작일지

14. 의미

촬영을 하지는 않았지만 작업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었다. 자료나 구성들은 이 블로그 말고 스프링노트에 모으고 있다. 개청춘 작업할 때 썼는데 편리한 것 같다. 기획서를 보여주고 코멘트도 받았는데 아직 어떻게 보여줄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직 주제에 대한 조사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드러내는 것의 문제. 나는 아빠의 정치의식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나'의 정치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는 빠뜨렸다. 간과했다. 그것은 '나'의 정치의식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나'의 정치의식에 동의할만한 사람들만을 관객으로 상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둘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보니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또 내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 꽤 큰 어려움인데 보는 사람들은 그걸 쉽게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보거나, 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전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후자는 좀 그렇다. 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늘 든다. 어떤 영화든 만드는 사람의 관점이 녹아날 수밖에 없지만, 왠지 자기가 직접 나오는 것은 자기 안에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 모르겠다. 뭐가 뭘까. 개청춘에 나온 '나'는 사실 나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반이다를 대표하는 인물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지금까지 정리해온 나를 다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같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라는 것도 드러내야 할 것 같고 감추고 싶은 것도 드러날 것 같다. 그런 걱정 때문에 움츠러드는 한편, 그동안 질질 끌었던 고민들을 이번에 정리하고 툭툭 털어내고 넘어서고 싶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 그 바람이 더 간절해서인지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 하루에도 몇 번씩 사로잡히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한다는 것 정도의 의미는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좀 자문을 구해보고 싶다. 오늘 반이다 회의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참 했다. 셋다 이런 고민에 시달리고 있는듯.

어쨌든 내일 또 대구에 촬영을 간다. 가서 이런 저런 생각하지 말고 게으름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구성안 작업하고 촬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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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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