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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1 [상영후기] 여성영화제 상영! 1

여성영화제에서 지난 금요일 한 번 상영을 했다. 세번째 상영임에도 전 날 잠을 설쳤다. 출연하신 부모님이 오시기 때문. 동생에게 파일을 보내줬기 때문에 영화를 미리 보시고 오시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어떤 질문을 할 지 신경이 쓰였다.

월차를 낸 남동생과 부모님이 12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산 지 벌써 7년째가 되어가지만 부모님이 올라온 건 처음이다. 가게를 하는 엄마가 명절 외에는 거의 문을 닫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딱히 내 사는 곳을 보여주고 싶은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편이다. 사이는 좋은 편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사는 편이다.

서울역으로 마중 가는 버스 안에서 기분이 묘했다. 나를 보러 세 사람이 서울에 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실감이 났다. 엄마가 가게를 닫고 오다니, 영화를 상영하는 게 좋긴 좋은가 보다 싶었다.

집에 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집이 좋고 괜찮다며 안심하셨다. 인사동으로 가서 밥을 먹고, 경복궁을 걷다가, 엄마 옷 한 벌 사주고 싶다는 아빠 때문에 명동으로 갔다. 명동에 가면 엄마가 입을 옷이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거기서 옷 사니까! 하지만 명동엔 엄마가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새가빠지게 돌아만 다니다가 아빠한테 뭘 모른다는 핀잔을 듣고, 신촌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들에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렸다. 엄마, 아빠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설레는 표정이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본인들의 모습이 나오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과 엄마는 자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지 못했고, 아빠는 묵묵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또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GV때 할 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고 GV 타임. 아빠가 없을 때는 GV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출연한 가족들이 있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의 감정을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아빠에 대한 판단을 말하는 것 때문. 대부분 가족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도 서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딸로서의 생각과 연출자로서의 생각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둬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GV 시작.

(사진출처)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관객분들이 적 극적으로 질문해주셔서 참 좋았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두신 분들이 참 많구나 싶었고, 기독교 나 경상도 출신으로 고민 하는 이도 참 많구나 싶었다. 권은선 프로그래머님의 스피디한 진행으로 GV를 진행했다. 가장 인상적 인 질문은 팍팍한 현실들 뿐인데, 어디서 힘을 얻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정확한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이런 맥락) 그 질문을 받으니 생각이 났다. 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에 갇히지 말고, 나의 작은 상처, 의문에 갇히지 말고, 자명한 진실들을 바라보면 된다는 것. 이번 작업으로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한 것들을 한차례 정리가 되었으니, 과거의 기억 때문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것, 그런 것이 정리되었다. 나에겐 명확한 느낌인데, 이런 추상적인 문장으로도 이 느낌이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보고 아빠가 어땠는지 물어봐서 아빠가 직접 대답을 했다. '기업을 하다보면 이런 비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대답을 했다.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 집에 가서 마저 읽겠다고 했지 만, 자신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듯.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질문하는 사람들이나 GV 후 아빠나 나에게 와서 말하는 사람들의 늬앙스였다. 아빠가 훌륭하시다고 말하시는 분 들이 계셨지만, 단서를 붙이시는 분들이 많았다. '가난하지만 혹은 못 배웠지만' 그 늬앙스는 마치 가난 하거나 못 배운 사람들은 훌륭해지기 힘들다는 전제를 단 것 같았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빠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가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가난을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나였다. '가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지만, 어쩌면 관객들도 아빠의 가난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든 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또 아빠를 원망했던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좀 더 '가난'이란 단어를 강조 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그리고 좀 더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지만, 역시 '가난'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밝히고 나니 동정의 눈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과민한 반응일까? 대부분이 그랬다고 하면 오버일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몇 분의 어른들은 그런 말을 나와 아빠에게 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GV의 분위기는 좋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가셔서 대구 집으로 돌아가셨다. 카탈로그를 챙겨가신 아빠는 사람들에게 자랑 좀 하셨으려나. 여성영화제에 상영한 걸로 한 2년은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딴 일 하라거나, 뭐하고 다니냐고 묻지 않겠지?
Posted by co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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